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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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영암읍

한식굴 아기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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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암리에 한식동이란 데가 있어.‘한가할 한’에‘쉴 식’자를 쓴디, 한식굴이라고도 불러. 거그는 고려 말에 곽우 장군이 처음 터를 잡고 살았어. 그 때는 장암까지 바다물이 들어오던 시절이라 배를 타고 개성의 대신들이 곽 장군을 만날라고 많이 와서 쉬어갔어. 그래서 한식동이라 해.
 한식동이 명당이었던지 곽 장군 후손이 그 마을에서 번창해는디, 한 때는 백여 호가 있었다 해. 그 사람들이 청주 곽씨여. 그란디 어느 날 상을 당한 곽씨 집안사람들이 뒷산에 있던 절 옆에다 묘를 쓸라고 했어. 너무 뽀짝 묘를 쓸라 한께, 주지 스님은 안 된다고 반대했고, 이에 곽씨 집안사람들이 스님을 데려다가 덕석말이를 했어.
 붸가 난 스님이 곽씨 집안을 혼구녕 내 줄라고 저기 활성산에 있는 범바우를 가리키며“저것이 가려서 곽씨 집안에 인물이 안 난다”고 소문냈어. 이것을 듣고 곽씨 집안에서 사람을 보내 활성산에 있던 범바우를 깨버렸어.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곽씨 집안에 애기가 태어 났는디 장사여. 백 일만에 걷고, 돌이 되자 항아리를 들었어. 몸에는 비늘이 있어 뚫을 수 없고,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나서 하늘을 날아 다녔어. 하도 신기한 일이라 소문이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어.
 임금은 이 아기장수가 크면 자신을 넘어뜨릴 역적이 될 것을 염려해서 아기를 죽여 버리고, 곽씨 집안사람들을 잡아 문초했어. 청주 곽씨는 잡혀가면 틀림없이 주리를 틀고 역모로 몰아 죽이거나 말 안한 사람은 평생을 감옥에 잡아놨어.
 장암에 청주 곽씨들은 객지로 도망가서 성을 청풍 곽씨라고 바꾸고 숨어 살았어. 한 백년이 지나자 청주 곽씨들이 다시 장암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 때가 지금부터 한 이백 년 전 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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