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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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영암읍

똥통에서 건진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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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육십칠 년 전 우리 동네는 그 어느 곳보다 좌우익 대립이 극심했는디, 그 이유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뭔지 몰랐지만, 다 같이 똑같이 잘 먹고 잘 산다고 한께 관심을 갖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옆 동네는 경찰과 군인 가족이 많이 살아서 평소부터 사는 자체가 차이가 있어서 갈등이 아주아주 심했어.
 그란디 인공 때 인민군 세상이 되니 옆 마을 사람들에게 감정 있었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말도 아니었어. 얼마 후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민군이 퇴각하니 인민군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밤손님이 된거야.
 낮에는 산으로 들어가 숨고, 저녁에는 내려와 양식과 동물들을 뺏어가고 그랬는디, 힘없는 사람들은 빨갱이들이 시킨께 했는디, 나중에 부역 했다고 토벌대에게 죽거나 끌려가 두들겨 맞고 피해가 겁나 많았어. 진짜로 억울하고 힘든 세월을 살았는디, 밤손님을 소탕하기 힘들어지자 영암읍으로 소개령이 내려졌어.
 동네 사람들을 모두 영암 읍내로 피신시키고, 이 말을 듣지 않고 집에 숨어 있었던 사람은 빨갱이로 몰아서 잡아다가 족치고 사살하고 하였는디, 우리 동네 사람 중 자기 동생이 밤손님이 된 박씨가 미처 피신을 못하고 있다가 토벌대가 들이 닥친거야. 큰형은 피하지 못하고 잡혔고, 박씨는 하도 급하니까 칫간으로 숨었는데 아무래도 들켜서 죽것다 싶은께, 그만 똥통으로 들어가 부렀어. 전에는 똥통에 벌가지도 많고 그랬는디 살아야 한께, 숨을 죽이고 숨은거야.
 조금 있다가 토벌대가 수색했지만 똥통에는 들어다 보지 않아서 발견이 안 된거야. 그래서 그 박씨는 살아 남은거야. 이것을 보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해야 할지 참으로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야.
 그 박씨는 그때에 잡혔더라면 큰 형님처럼 재판도 없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것인디, 그때는 그런 시절인께, 운이 좋은 것이지. 그분의 아들이 지금 인천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는 출향인인디, 돈 벌어서 고향에 많은 지원을 해줬어.
 그 분이 그때 당해 부렀으면 그런 일이 있었것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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