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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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삼호읍

고달픈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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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두 살에 목포에서 일로 시집 왔서라. 뭣이 뭔지도 모르고 와서 살았지라. 와 본께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계시고, 시아부지 시어매 있고, 거기다 시누이 셋에 시아제 둘이 같이 살고 있습디다. 우리 아저씨가 장남이고, 그 전에 형제 더 있었는디, 죽어서 못 봤어라.
 시어머니가 그라고 시집살이 시킵디다. 시누이들이 뭣 안 준다고 맨날 쪼아대고, 아이고 못 살 것습디다. 날마다 쉬는 때도 없이 밭일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짐승처럼 일 해도 끝도 갓도 없고, 지금은 오히려 감시하고 그래요. 한 번 잔소리하면 이삼 일은 뭐라 하고, 참말로 서럽디다. 남편은 맘이 좋아서 그냥 참으라 하고 그랬어라.
 어렵게 지사 지내면 금새지사가 닥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 다 해 놓고 그라고 살았는디, 신랑이 좋게 하니 안 죽고 살았는지 몰라. 분가는 안 하고 같이 살았어라. 시할아버지 할머니 초상 다 치고, 시아부지 시어매 초상 다 치고 그랬어라. 그것이 다가 아니고 시누이 시아제들 다 여우고 했는디, 내 평생 시댁 식구 뒤치다꺼리 하다 다 보냈어라.
 하도 힘들어서 애들 보면 불쌍한께, 한번은 같이 죽을라고도 했서라. 그란디 아들은 꼭 시어매가 데리고 자고 그란께 눈치 봐서 데려오면 같이 죽을라 했는디, 그렇게 안 됩디다. 그래도 남편이 넒은 사람이라 살다 본께 자석 여덟 낳았어라. 낳다가 하나 죽고, 키다가 하나 보내고 육남매 키웠어라.
 억울한 것은 그라느라고 내 새끼들은 제대로 입히고 학교 보내지 못한 것이 한이어라. 시동생들이 돈 뜯어 갈 때는 돈 벌면 갚아준다 하더니 시집 장가가서 지 새끼들한테는 별 것 다 해줌시로 우리 새끼들한테는 콧물도 없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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