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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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삼호읍

나락밭의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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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낭주 최가인디, 신랑 얼굴도 안 보고 나주 임씨 집안으로 시집갔어라. 나는 개띠고 우리 아저씨는 말띠였는디, 그렇게 만나면 좋다고 우리 작부님이 혼인해라 한디, 싫지 않습디다. 다른 사람은 다 싫다 했는디, 얼굴도 보지 않고 그냥 하란대로 했어라. 그것이 다 인연 갑습디다. 시부모 없이 동서 밑으로 들어 갔는디, 시집살이 안 시켰어. 몇 년 살다가 새집 지어서 잭임 났어. 산에 솔낭구 많은께, 목수 불러서 비어다가 집 좋게 지어서 나왔어라.
 그란디 영감이 그 동네에서 유명한 한량이여. 내 애간장 많이 녹였어. 걸핏하면 어디 어디 각시 집에 있다 해, 다 귀로 들어와. 우리 영감만치 한량 노릇한 사람 본적이 없어라. 원체 호인이라 누가 밉게 본 사람이 없습디다.
 그 양반이“나락 밭에 제비”라 그랬어. 그저 널려있는 나락 좀 따 먹었다고 하면서“어찌게 제비가 나락을 안 먹겄냐”고 합디다. 그라고 바람을 피면서도 밖에다 애새끼 하나 안 놓고, 딴 여자 안 울리고 그랬제. 그 양반이 마음 하나는 참했어.
 남편이 그라고 바람을 피워도 참고 살았제. 친정 부모 위신 세워 줘야 한께. 뉘집 딸이 요라고 이혼했다 하면 쓰것소? 그라고 자식들이 있는디, 어찌게 나 몰라라 하고 가것오. 그래서 이것이 팔자구나 하고 애들 보며 살았제. 내가 사남이녀 뒀어라우. 요즘 사람 같으면 폴새 갈라 서 버렸것제.
 그 양반 바람 피고 들어온 것 다 알면서도 붕어즙도 고아 주고 불미나리도 해주고 그랬어. 애들 아부지가 잘못 되면 안 된께 붕어에다 녹두 넣고, 생강 넣고, 찹쌀 넣어서 푹 끓여갖고 받쳐놔, 가만 놔두면 애래 붙어. 그라믄 몇 국자 떠서 덥혀가지고 밥 잡수기 전에 한 공기씩 드시게 해. 동네 방죽가에서 불미나리 캐서 생즙도 내 드리고, 다 그렇게 하고 살았어. 내가“대천 한바다”라고 소문났어. 만고풍상을 다 저겆어. 그라고 이해하고 산께 좋은 날 옵디다. 그 양반이 나한테 그라고 잘 해 줍디다. 남편이 염소 세 마리나 한약 넣어서 해줬어. 그 덕분인지 아직까지 귀도 안 먹고 잘 살고 있소.
 바람기도 한 땝디다. 쉰대여섯 먹은께 피라해도 못 피고 집에 들어앉습디다. 그 양반이 여든네 살까지 살고 사 년 전에 돌아가셨어라. 우리 자석들도 그런저런 내막을 안께 그란가, 인자는 그라고 나한테 잘 해주요.
 그 양반은 두 방에 신발 놓는 사주라 합디다. 큰 방에도 들어 댕기고, 작은 방에도 들어가는 팔자라는데 뭐라 하것오. 옛날 부잣집 큰마누라들은 그라고 참고 살았다 합디다. 아이구 요즘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것소. 걸핏하면 이혼 아니요?
 저 산 너머 여자는 남편이 염병하게 바람을 피고 댕긴께, 홧병으로 잠을 못 잤어. 밤이면 불을 꺼도 서끌이 훤히 보인다 해. 그라고 스트레스 받아서 암이 생겼어. 그렇게 살다 죽으면 뭔 시상이것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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