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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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군서면

왕인과 아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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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구백사십년 즈음에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다시 중국대륙으로 전쟁이 확장되자 일본은 많은 병력이 긴요하게 됐는데, 이때 당시 조선 총독은 조선 사람들의 반일 감정을 없애기 위해 내선일체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일본과 조선은 같은 겨레로 한 몸이라는 뜻을 지닌 내선일체를 앞세워 조선 청년을 전선으로 내 보내기 위한 술책이었지. 내선일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고대사를 파헤쳐 고지기와 신쇼끼의 고대사 기록에 몇 줄 나와 있는 사실을 침소봉대하여 왕인을 발굴하고, 왕인의 탄생지를 찾고자 온갖 힘을 기울였어. 그 방편으로 목포 유달산 기슭에 현존하는 본원사 주지 아오끼를 시켜서 영암 구림을 탐색케 한 적이 있어요.
 내가 천구백사십오년에 중학교 사학년이었는데 문태중학교에서 아오끼로부터 일본 역사를 배운 일이 있는데, 그 때 구림출신 변호사였던 박찬O 씨로부터 아오끼 주지의 왕인 탄생지 발굴 활동에 대한 언질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결국 아오끼는 왕인 탄생지를 탐지하지 못하고 해방이 되었고, 따라서 왕인에 대한 이야기도 잊혀졌어. 그런데 해방이 되고 제일공화국, 제삼공화국을 거쳐서 지방자치의 바람과 함께 왕인 이야기가 다시금 부각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고대문화의 교차점에서 남긴 그 분의 업적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또 그 업적에서 무엇을 본 받을 것인지. 우리의 처신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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