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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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학산면

컴컴한 먹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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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기서 살면서 저 위쪽 마을 묵동이라는 이름이 하도 신기해서 그 내력을 알아봤어요. 묵동은 원래 먹뱅이라고 했는데 이 마을이 유난히 해가 빨리 진대요. 그래서 저 아래 동네 사람들이“먹뱅이는 애기들 갤혀 입혔냐”라고 놀렸다 해요. 그만큼 빨리 어두워진께 아기들 기저귀 갈아입히고 잠자리 준비했냐는 뜻으로 그런 모양이요.
 옛날에는 묵동 안 골짝에서 숯을 구웠다 해요. 그 쪽은 숲이 울창해서 숯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숯을 만들면서 자연히 먹도 만들었나 봐요. 먹은 한자로 묵이잖아요. 인공 전까지 마을 위에 숯구댕이가 있었어요.
 왜 묵동이라 했을까?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어떤 분은 풍수에 따라 동네 위에 있는 산이 연지봉이라 해서 벼루가 있어서 동네가 먹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거기서 옛날에 먹을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골짜기가 깊어서 밤이 빨리 찾아와서 어둑컴컴해서 먹뱅이라고 했다는 사람도 있드라고요.
 두 번째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원래 먹을 만드는 공방이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먹방이라고도 하고, 묵뱅이라고도 했다가 한자로 먹 묵에 골짜기 동을 붙여서 묵동이라 했다고 해요. 거기가 원체 깊은 산 속이라 숲도 울창하고 먹을 만드는 재료인 소나무가 많아서 아주 옛날부터 그 쪽에서 먹을 만들었나 봐요.
 옛날 진상품으로 만들었던 송연묵은 엄청 많은 소나무를 꼬실러야 해서 이곳이 적합했던 모양이요. 소나무 태운 재를 모아서 아교로 뭉쳐서 만드는 일이 순 막노동이라 관에서 억지로 시켰다고 봐야지라. 조선 이전에는 먹을 중국에까지 보냈다고 한께 귀한 물건이었지요.
 이건 들은 얘긴디, 조선이 망하고 이곳에서 더 이상 먹을 만들지 않게 되자 사람들이 그 동안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던 먹방의 기억을 없애기 위해 묵동을 명동이라고 했다 하대요. 어쩐 사람 말로는 묵동이 하도 캄캄한 느낌이라 어두운 곳이 아닌 오히려 밝은 동네란 뜻으로 일제 때 지었대요.
 그런대 인공 때 토벌 작전한다고 묵동 마을을 싹 불질러 부렀는디 한 집도 없이 다 꼬실라져부렀대요. 나중에 마을이 생기고 바람 막은다고 송전밭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마을을 어둡게 한다고 싹 다 비어버렸어요. 사람들은 이 마을이 불에 꼬실라져버린 이유가 명동이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해서 옛 마을 이름이었던 묵동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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