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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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영암읍

참봉 신경 묘비

주  소
영암읍 농덕리 213
건립연대
경오 정양지월 (1930년 4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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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각 참봉 평산신씨 경의 묘
낭주(朗州) 금정방(金井坊) 병방동(甁方洞) 침손원(枕巽原) 곁에
4척의 봉분(封墳)이 있으니, 초동목수(樵童牧豎)는
그 출입을 경계하며 말하기를 이곳은 바로 신공(申公)의
의관(衣冠)[衣履]을 매장한 곳이라고 한다.
만약 그 교화가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이 미치지 않았다면,
그것이 능히 이와 같이 몹시 취한 것이다.
공(公)의 휘는 경(暻), 자는 청일(晴日)이다.
신씨(申氏)의 세계(世系)는 평산(平山)에서 나왔으니,
고려(高麗) 장절공(壯節公) 휘(諱) 숭겸(崇搛)을 시조로 하며,
대대로 번성하여 매우 빛난 가문이다.
공의 고조는 휘가 평(坪)으로 문장과 학문이 있어서
세간에서 처사로 칭해졌다. 증조(曾祖)는 휘가 여익(汝翼)이고,
조부는 휘가 번(墦)이며, 부친은 휘가 한주 (漢柱)이니,
대대로 음덕이 있었다. 모친은 낭주(朗州) 최씨(崔氏)로
최준악(崔俊岳)의 따님으로 부녀의 덕이 있었다.
영조(英祖) 20년 갑자년(甲子年, 1744)에 공을 낳았다.
공은 품성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어서
부모를 모시는 사이에도 형제와 화목하였다.
자제와 조카들을 가르칠 때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었으며,
친척과 향리의 여러 사람과 친목을 다졌다.
순조(純祖) 8년 무진년(戊辰年, 1808)에 졸하니 향년 65세이다.
부인은 함풍(咸豊) 이씨(李氏)로 이세영(李世英)의 따님이니 덕이 있었다.
묘는 별도로 매장하였는데, 오자덕곡(五者德谷) 자좌원(子坐原)이다.
아들 넷을 두었으니, 장남은 대집(大執)이고
다음으로 대유(大有), 대흥(大興), 대숙(大夙)이다.
예절을 매우 성대히 갖추어 나아가기를 아끼지 않고 와서 문장을 청하니,
그이는 대유의 증손으로 그 이름을 장(長)이라 하고, 6대손은 학균(學均)이다.
때는 경오년 4월에 보낸 것이다.
장흥(長興) 고광선(高光善) 지음

璿源閣叅奉平山申公暻之墓
(선원각참봉평산신공경지묘)
朗州之金井坊甁方洞枕巽原旁然有四尺之封樵牧戒其入曰此
(낭주지금정방병방동침손원방연유사척지봉초목계기입왈차)
乃申公衣履之藏苟非其遺化入人之深其能如是艼謹按公諱
(내신공의리지장구비기유화입인지심기능여시정근안공휘)
暻字晴日申氏系出平山以勝國壯節公諱崇搛爲肇祖歷世
(경자청일신씨계출평산이승국장절공휘숭렴위조조력세)
簪俎甚爀高祖諱坪有文學世耵彌處士曾祖諱汝翼祖諱墦考
(잠조심혁고조휘평유문학세정미처사증조휘여익조휘번고)
諱漢柱世有隱德妣朗州崔氏俊岳女有壼範以英廟甲子生公公
(휘한주세유은덕비낭주최씨준악녀유곤범이영묘갑자생공공)
賦性孝友定省之暇昆季湛樂訓迪子姪有方族戚鄕里親睦以
(부성효우정성지가곤계담락훈적자질유방족척향리친목이)
純廟戊辰卒享年六十五夫人咸豊李氏世英女有德墓別葬匡五
(순묘무진졸향년육십오부인함풍이씨세영녀유덕묘별장광오)
者德谷子坐原擧四男男長大執次大有大興大夙節甚蕃不殫廸述來
(자덕곡자좌원거사남남장대집차대유대흥대숙절심번불탄적술래)
請文者大有曾孫棟其名云 長六代孫學均
(청문자대유증손동기명운 장육대손학균)
峕庚午正陽之月下付長興高光善 撰
(시경오정양지월하부장흥고광선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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